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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ays/Analysis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의 부활

 

 BA(Baseball America) 등 공신력을 갖는 다수의 야구 전문 잡지에서 전미 유망주 랭킹 1위를 차지했던 초대형 유망주 출신인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이하 블게주).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당초의 기대치를 만족시켰던 해는 '21년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해를 기점으로 주전 1루수로서의 성적(3년간 평균 wRC+ 138.7)을 거두는데 성공한 결과는 '24년 1,990만 달러라는 연봉조정 금액으로 보상받았다. 하지만 팀과 합의를 이루지 못한채 연봉조정위원회를 거쳐 결정된 금액이기 때문에 서로간 불편한 기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해를 거듭하며 급격히 상승하는 연봉에 비해 발전이 더딘 성적으로 블게주와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시점. 조정위원회를 통한 연봉 계약은 이러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하나의 사건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가치가 더 하락하기 전 트레이드를 통해 수준급의 유망주를 팜에 수급하여 곧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암흑기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보 비솃과 함께 핵심 선수로 평가받으며 '20년부터 시작된 블루제이스의 윈나우 행보에 주축으로서 활약해야 했지만, 팀의 실망스러운 포스트시즌 결과와 '21년을 제외하면 미지근했던 블게주의 성적은 코어로서 확실한 믿음을 주기에는 부족했다. 그 기간동안 즉시전력감으로 합류한 여러 선수들은 에이징 커브로 더 이상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린 현실이다. 이들과 달리 아직 젊은 나이인 블게주와 비솃이 함께 FA 자격을 얻는 25년까지가 팀의 실질적인 페이즈 원(phase one)이라 할 수 있으며, 이제 마무리 단계에 다다랐다. 블루제이스에게는 상술한 두 명 중 한 명과 장기계약을 맺어 페이즈 투(phase two)를 시작하거나 미련없이 대대적인 트레이드를 통해 리빌딩을 시작하여 새로운 페이즈를 준비하는 선택지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지난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통해 그들은 페이즈 투에 대한 가능성을 높였다. 그리고 해당 선택의 기반에는 비솃이 부상으로 시즌을 망쳐버린 사이 다시금 폭발하기 시작한 블게주의 타격 능력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24년 블게주의 가장 큰 변화는 풀 히터(pull hitter)에서 스프레이 히터(spray hitter)로의 진화이다. 상기 이미지는 '22년과 '24년의 안타 분포도이며 이를 통해 중앙과 우측으로 공을 보내는 능력의 상승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풀 히팅을 통해 대부분의 장타를 생산해낸 '22년과 달리 올해는 방향을 가리지 않고 장타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 '24년에는 타구의 65.8%를 중앙과 반대편으로 보내고 있으나, '22년과 '23년에는 각각 62.1%, 61.6%를 기록했을 뿐이다. 심지어 커리어하이 시즌인 '21년조차 62.1%의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과거의 당겨치려는 의지가 강했던 타격에서 방향을 가리지 않는 타격으로 블게주가 진화했음을 방증하는 지표이다. 커리어 로우를 기록 중인 IFFB%는 이러한 타격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이며, 기존의 풀 히팅 위주의 타격에도 높지 않았던 IFFB%가 더 낮아졌다는 사실은 진화한 타격 스킬을 보여준다. '21년에 비해 줄어든 홈런 개수는 현 상황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21년에 기록한 46개의 홈런은 (비록 마이너리그 구장을 대부분 사용했지만) 대단한 숫자이다. 그러나 올해 블게주는 시즌이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2루타 개인 최다 기록을 경신했으며 장타 영역에서 커리어 하이에 가까운 수준이다. 즉 '21년과는 다른 유형으로 또 하나의 최고의 시즌을 만들어낸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모습이 많은 전문가들이 블게주에게 바라는 모습과 가깝다. 유망주에 대한 평가 기준인 20-80 스케일에서 contact 80을 받은 이유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타석에서 향상된 대처능력은 다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블게주는 초구에 스윙을 하는 확률이 커리어 로우인 27.3%이다. '21년과 비교하면 15.9%가 낮은 수치이다. 당연히 헛스윙률 역시 21.7%로 커리어에서 가장 훌륭하다. 뿐만 아니라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온 공에 대해 비교적 자주 스윙을 내지 않는 반면 컨택율은 통산 기록 중 가장 높다. 또한 빠지는 공에 대한 컨택율도 커리어 하이다. 이런 수치들이 의미하는 바는 타석에서 조급한 승부를 하지 않으며 투수와 끈질긴 승부를 할 능력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레 실투를 유발할 수 있게 되고 성적 상승과 직결되므로 상술한 전문가들이 기대했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측부터 '21~24년 존에 따른 삼진율

 
 물론 단기간에 위와 같은 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블게주의 가장 큰 약점인 낮은 바깥쪽 승부에 대한 개선을 점진적으로 해냈기 때문에 결국 폭발적인 성적의 기록이 가능했다. '21년 블게주는 노골적인 낮은 바깥쪽 승부에도 이에 대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측 하단으로 들어오는 공에 속수무책으로 삼진 혹은 아웃을 당하는 패턴을 자주 보여주었다. 그러나 '23년부터 개선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여전히 같은 존에 삼진을 당하고 있지만 삼진 분포가 넓어진 기록이 보인다. 역설적으로 블게주가 낮은 바깥쪽 승부에 쉽게 당하지 않자 투수들이 승부할 다른 영역을 찾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24년에 들어 확실하게 보인다. 약점을 완벽하게 극복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명백한 결점을 보이던 영역의 보완에 성공했다고 해석 가능하다. 연도별 존에 따른 삼진율을 확인해보면 눈에 띄는 발전을 해냈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이는 타구질의 향상으로 이어져 '23년부터 해당 존에 대해 Line Drive%가 상승하여 '24년에도 여전히 향상된 수치를 기록 중이다. 즉 약점이었던 존에 대한 K%을 줄인 상태로 BB%를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하며 승부구에 대한 컨택율까지 향상되자 투수들이 노골적으로 승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과거 블게주는 오프스피드 피치 대처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대표격인 체인지업을 타격하는 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커리어 하이인 '21년조차 오프스피드 상대 xwOBA .354를 기록할 정도였다.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1년의 성적이 가능했던 이유는 패스트볼 계열의 투구를 폭격했기 때문이다. 포심 xwOBA .527, 싱커 xwOBA .403을 기록했음을 확인해보면 당시 블게주는 패스트볼 킬러라고 불러도 손색 없었다.)  22년에도 더욱 실망스러운 대처로 xwOBA .303를 기록했다. 그러나 '23년부터 반전된 양상을 보여주기 시작하며 xwOBA .390으로 확실한 향상을 이루었고 올해에도 동등 수준을 유지하며 xwOBA. 382를 기록 중이다.  또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던 브레이킹볼 대처 능력마저 놀라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전체적인 구종별 대처 능력의 밸런스를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블게주 타격 성적의 이유인 대처 능력의 향상에는 특유의 토탭(toe-tap)을 기반으로 한 약간의 타격폼 수정도 큰 영향을 끼쳤다. 최근 블게주 타격의 핵심은 토탭 후 유연하고 많은 손 및 손목 움직임을 투구 전에 가져가며 타격 타이밍을 맞추기 위한 준비하는 일이다. 이는 최근 고무줄(rubber band) 효과를 노린 많은 수의 타자들이 수행하는 레그킥과 상체 및 팔 움직임의 싱크를 맞춰 폭발적인 힘을 발생시키는 타격과는 명백히 다르다. 스프레이 히팅이 가능한 이유도 짧은 순간에 폭발하기보다 토탭 후 많은 손목 움직임을 통한 준비와 스윙 시 기존 대비 내려간 팔 위치로 다양한 구종 및 넓은 존에 대한 대응책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블게주는 '23년부터 약점 개선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성적 향상의 시그널이 충분했음에도 기대치만큼 실제 결과로 이루어지지 못한 불운이 동반되었으며, 비로소 '24년에 현실에서 성적이 구현되었다고 추측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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