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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ays/Review

토론토의 아이콘, 호세 바티스타

 

 토론토 블루제이스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호세 바티스타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우여곡절 끝에 캐나다에서 잠재력을 폭발시킨 기묘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이다. '00년 MLB 드래프트에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20라운드 599픽 지명을 받아 50만 달러의 계약금과 함께 프로 커리어를 시작한 바티스타는 지명 순위에서 파악 가능하디시피 전미에서 주목받는 유망주는 아니었다. 약 3년간의 마이너리그 시절동안 BA는 바티스타를 피츠버그 팀내 7위 유망주로 평가하며 다음과 같은 의견을 기술했다. "좋은 선구안을 가지고 있어 경험이 증가함에 따라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는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평균 이상의 어깨(arm-strength)와 운동능력을 가진 좋은 수비의 3루수이며 아직 자신의 배트 스피드를 파워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으나 신체적인 성장과 함께 가능할 수 있다." 나쁘지 않은 평가임에는 분명했으나,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라 보기는 어려웠으며 마이너리그 성적 자체도 무난한 수준이었다. 마이너리그 생활을 보내던 중 '03년의 바티스타는 한 번의 분기점을 가지게 된다. 5월 경기에서 쓰레기통을 때리다 손이 부러져 2개월의 부상 기간을 갖게 되자 피츠버그는 룰5 드래프트에서 그를 보호대상 선수 명단에 포함하지 않았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를 데려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볼티모어는 얼마 후 바티스타를 웨이버 공시하였고 당시 템파베이 데빌레이스가 그를 클레임하였다. 25일 후에는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템파베이로부터 현금구매하였고 한달 후에는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 되었으며, 최종적으로 다시 피츠버그에 복귀하는 전례없는 1년을 보내게 된다(한해동안 5개의 팀을 옮긴 역사상 최초의 기록). 볼티모어에 있는 동안 BA는 그를 팀내 12위 유망주로 평가하며 재차 의견을 기술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빠른 배트스피드로 최고 수준의 패스트볼을 따라잡을 수 있다. 파워 포텐셜이 최고의 툴이다. 3루에서의 좋은 운동능력과 어깨를 보유하고 있으며 '03년 룰5 드래프티 중 가장 높은 실링을 가진 선수이다."

 

 그러나 한층 개선된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은 선수 개인에게 좋지 못한 시간이었는데, 부상과 함께 지속적인 이적의 여파로 경기를 제대로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티스타는 부침을 겪었던 약 2년간의 시간을 뒤로 하고 '05년부터 다시 더블 A에서 정기적인 기회를 받기 시작한다. 당시 기록한 23개의 홈런은 리그 4위였으며 전반적으로 단점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흥미로운 선수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기간 BA 평가는 더욱 디테일해지며 바티스타의 실링은 이미 정해졌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게 되는데, 24살의 나이에 더블 A에서 활약하며 무난한 생산력을 보이는 타자에게 높은 잠재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빠른 배트 스피드와 플러스급의 파워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좋은 레인지와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평균 이상의 수비를 보이는 3루수가 될 수 있는 툴을 보유하고 있다. 주자로서는 평균이지만 2루와 모든 외야 포지션이 가능한 다재다능한 선수이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부족한 선구안은 나쁜 투구에 속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뻣뻣한 손으로 인해 루틴한 플레이에서 너무 많은 실책을 만들고 있다." 상술한 내용은 '06년이 시작하기 전의 평가로 배트 스피드, 파워, 어깨라는 키워드에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었으나, 이전의 강점이었던 선구안을 잃어버린 모습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상위 레벨에 올라갈수록 성장 가능성이 닫히는 모습으로 보여지기에 충분했다.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마이너리그를 졸업한 바티스타는 '06년부터 MLB에서 풀타임(full-time)의 기회를 받기 시작해 117경기동안 wRC+ 96, WAR -1.1의 실적을 거뒀고 이는 대부분의 팀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기에는 부족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탱킹을 하고 있던 피츠버그에서는 주전 3루수이자 외야 백업 유틸리티로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매력적이지 못한 성적에도 정기적인 출전이 가능했던 환경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큰 성장을 이루지 못한 채 유망주 시절의 평가와 유사한 커리어를 쌓으며 바티스타가 '06-'08까지 기록한 성적은 평균 wRC+ 93, 합산 WAR -0.3으로 실망스러웠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3루 수비는 오히려 빅 리그에서 좋지 못했다. 결국 '08년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팀에 합류한 앤디 라로쉬에 의해 트리플 A로 강등된 바티스타는 당시 스캇 롤렌의 부상으로 백업 3루수를 찾고 있던 토론토로 트레이드를 통해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커리어의 대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당시 토론토의 어시스턴트 GM이었던 알렉스 앤소풀로스는 '13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바티스타의 합류 과정을 회상했는데, "그 누구도 바티스타가 심지어 주전(everyday player)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일류 선수(front-line player)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라고 밝혔다. 이는 트레이드 당시 고려한 최우선 순위가 잠재력이 아닌 스캇 롤렌의 부상으로 인한 백업으로서의 활용 가치였다는 점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은 심지어 '08년과 '09년을 거치며 연봉 조정으로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상승하자 방출을 고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09년 9월부터 심상치 않은 징조가 나타난다. 운이 많이 따랐던 3월/4월 성적( BABIP .414, OPS .868, wRC+ 133, wOBA .385)을 제외하면 또 하나의 특색없는 시즌을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9월 들어 전혀 다른 타자가 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9월/10월간 기록한 성적은 wRC+ 139, wOBA. 355, OPS. 944, ISO .349(은퇴한 시점에서 보면 익숙한 수치)로 기대치를 아득히 초월하게 되는데, 특히 ISO .349는 MLB 최상급의 파워히터들이 보여주는 수치이므로 비록 단기간의 성적이지만 대내외적인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시기 토론토의 일원이었던 타격 코치, 드웨인 머피는 바티스타의 기존 스윙이 가진 문제점과 함께 개선점을 알려주게 된다. 교정의 대전제는 길게 휘두르는 방식을 짧고 다이렉트하게 바꾸는 일이었으며 긴 스윙 궤적은 몸쪽으로 들어오는 패스트볼 공략을 어렵게 만들어 전반적인 타격 타이밍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었다는 분석이었다. 스카우트들이 높이 평가한 바티스타의 타고난 장점은 빠른 힙(hip) 회전을 통한 강력한 토크(torque)의 생성이었다. 순간적으로 빠르고 강한 토크 생성이 가능하기 때문에 공이 플레이트 깊숙하게 들어오도록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바티스타는 늦은 타격 타이밍으로 인해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자 제대로 토크를 생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즉 제대로 된 모멘텀을 생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티스타는 머피와 함께 타격 타이밍을 변경했고 기존에는 투수가 공을 뿌리는 시점에 시작했던 레그킥(leg-kick)을 한 타이밍 더 빠르게 가져가는 결정을 내린다(인터뷰에 따르면 투수가 글러브에서 공을 빼내는 타이밍에 맞춘다고 한다). 이를 통해 공을 더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고 손과 배럴(barrel)을 충분한 시간동안 몸 뒷면에 위치시킬 수 있게 되었다. 레그킥 이후 앞발을 내딛는 타이밍은 트리거가 되며 스윙을 시작하고 여유가 생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스윙은 맞히는 데 급급한 게 아닌, 플레이트를 통과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며 이상적인 매커니즘을 만들게 된다. 이 모든 행동들이 결합되어 바티스타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동안 문제였던 패스트볼 대처는 올바른 타격 타이밍이라는 해결책을 만들자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는 '09년의 안타 데이터를 통해 변화의 체감이 가능했는데, 9월 전까지 월별 10개 미만의 패스트볼 상대 안타 수가 9월이 지나는 시점에 급격한 상승을 이루었다. 실제 들쭉날쭉하던 헛스윙률도 9월 들어 10% 수준까지 감소하였으며 wOBA .460, SLG. 721의 수치를 보여줄만큼 확실한 향상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10년의 바티스타는 유망주 당시 전문가들의 평가를 우습게 만드는 본격적인 대폭발 시즌을 만들게 된다. 백업 유틸리티에서 주전 우익수로 포지션을 확정함과 동시에 수비 부담을 감소시키고 최종적으로 기록한 성적은 wRC+ 165(AL 3위), wOBA .422(AL 3위), OPS .995(AL 3위), 54HR(ML 1위), fWAR 6.5(AL 4위)로 메이저리그를 폭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자타공인 엘리트급 활약을 펼친 시즌을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2위와 12개 차이를 보이는 압도적인 홈런왕, 생애 첫 올스타 선정, MVP 4위, 실버 슬러거, 행크 애런 상까지 수여하게 된다.  결국 '10년의 성적은 '09년 9월에 이루어진 변화를 바티스타가 완벽히 체화하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 커리어 초기 약점으로 꼽힌 투수들의 몸쪽 패스트볼 투구 비율 변화를 살펴보면 '09년에 비해 '10년에는 몸쪽 패스트볼 투구 비율이 감소하였으며 이는 타격 타이밍 변화에 따른 약점 극복의 효과라 할 수 있다. 즉 투수들이 더 이상 몸쪽에 대한 승부를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해석 가능하다. 변모한 모습은 전체 구종 중 패스트볼 비율과 안타 수를 통해서도 확인되며 '08년과 '09년에 거쳐 35% 내외를 기록하던 패스트볼 비율이 '2010년부터 5% 이상 줄어들었고, 타석수의 차이가 존재하긴 하나 패스트볼 상대 안타 수가 1년만에 50개 증가하는 기록을 보여주었다. '10년 바티스타의 패스트볼 상대 기록은 wOBA. 463, SLG .711, BA .284, 44HR으로 투수들이 패스트볼을 던지는 행위조차 부담스럽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또 다른 변화는 극단적인 풀 히터(pull-hitter)로의 진화이다. 이전까지 타격 타이밍을 급히 맞추는 데 급급했다는 사실은 전반적인 타구 방향 비율을 통해 알 수 있다. '09년까지는 약 30~40% 수준의 당겨치는 비율과 함께 약 25% 수준의 밀어치는 타격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의도적인 밀어치기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늦은 타격 타이밍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라고 해석하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개조가 이루어진 '10년부터 50%가 넘는 풀 히팅 비율을 가져가며 우수한 선구안(15%에 가까운 BB%)과 어울리는 타격 어프로치를 찾았고 확실한 존 설정과 적절한 타격 타이밍으로 인해 발생한 40% 육박하는 hard%는 20%가 넘어가는 HR/FB로 보상받게 된다(시즌 종료 후 5y, 65m 연장 계약). 바티스타는 스윙 자체를 많이 내는 타자는 아니었지만 높은 볼넷율과 낮은 헛스윙률은 투수들에게 명확한 존 설정에 따라 확실한 스윙과 결과를 가져가는 부담스러운 상대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11년에는 더욱 놀라운 시즌을 보내게 되는데 최종 wRC+ 180(ML 1위), wOBA .443(ML 1위), OPS 1.055(ML 1위), 43HR(ML 1위), fWAR 8.1(AL 2위)의 성적으로 리그 전체에서 가장 우수한 타자로 우뚝 서게 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다. 바티스타는 홈런왕, 올스타 선정, 실버 슬러거, 행크 애런 상을 연속으로 수상했으며 MVP 3위까지 오르게 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부상 등으로 인해 후반기에 하락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당해 어마무시한 성적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전반기 wRC+ 209, 후반기 wRC+ 142, 청정 타자로서 역대 가장 위대한 시즌을 만든 '24년의 애런 저지가 기록한 wRC+ 218). 특히 '10년과 달리 패스트볼 뿐만 아니라 모든 구종에 대해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는데, 아쉬웠던 브레이킹볼 상대 성적마저 wOBA .480, SLG .652 로 급격한 상승을 이루게 된다. 최정상급이었던 BB%는 한술 더 떠 '11년에 전체 타자 중 1위에 해당하는 20.2%를 기록하는 등 '11년의 바티스타는 완벽한 타자였다고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확실한 스텝 업에 성공한 후 부상, 수비 시프트 등으로 약간의 부침을 겪기도 하나 빅리그의 시즌에 따라 A~S급 이상의 성적을 내는 선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12년부터 폭발하기 시작한 에드윈 엔카나시온과 함께 강력한 홈런 듀오를 구축하며 토론토의 암흑기를 지탱하는 리더 역할을 수행한다. 비교적 아쉬웠던 '12년, '13년의 성적을 뒤로 하고 '14년에는 wRC+160(AL 4위),wOBA .402(AL 4위), OPS .928(AL 4위), 35HR(AL 5위), fWAR 6.2(AL 3위)으로 실버 슬러거를 수상하고 MVP 6위에 오르며 또 하나의 우수한 시즌을 만들어냈다. 

 

 '11년과 함께 커리어의 하이라이트라 평할 수 있는 '15년에는 여전히 S급 타자에 어울리는 성적을 기록하며 22년만의 AL 동부지구 우승과 함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특히 후반기 wRC+ 160으로 중요한 시점에 펼쳐지는 경기에서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Baseball Savant가 statcast 기록을 시작한 '15년의 수치를 살펴보면 Barrel%, xSLG, xwOBA 모두 상위 5% 이내에 해당하는 타자였다. 그러나 이 시즌의 백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ALDS로 시리즈 전적 2대2로 상황에서 펼쳐진 엘리미네이션 게임에서 MLB의 배트 플립 시대를 열어젖힌 역사적인 결승 홈런이었다. 사실상 바티스타가 팬들 사이에서 토론토 역대 최고의 타자로 등극한 장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큰 임팩트가 있었던 홈런이었다. 팀은 아쉽게도 기세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당시 최고의 불펜진과 수비를 가지고 있던 캔자스시티를 만나 시리즈 전적 2-4로 ALCS에서 탈락했지만, 바티스타는 ALCS에서도 6차전 결정적인 홈런을 기록하는 등 큰 경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이며 자신의 스타성을 널리 알렸다. 비록 WS 진출에 실패하였어도 팬들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함과 동시에 명장면을 통해 커리어의 방점을 찍은 시즌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6년부터 바티스타와 토론토는 이별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획득하게 되자 선수는 5y, 115m을 요구하게 되었고, '16년이 끝나면 36세에 접어드는 선수에게 큰 돈을 주기 꺼려했던 구단 입장의 차이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15년 종료 후 기존 단장이었던 앤소풀로스가 물러나고 마크 샤파이로, 로스 앳킨스 체제가 들어서게 된 점도 영향을 끼쳤을 확률이 높다). 또한 당해 팀은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였으나 ALCS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 비교적 무기력하게 패배하였으며, 바티스타는 완연한 하락세로 의심되는 성적을 기록함과 동시에 시즌 중 루그네드 오도어에게 주먹을 맞는 굴욕을 당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시즌을 보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차가운 FA 시장의 바람을 그대로 맞게 되었으며 거대한 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채 토론토와 옵션을 포함한 최대 3y, 60m 계약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에이징 커브(ageing curve)가 확실했던 바티스타였기에 이후 커리어는 별다른 반전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결국 '17년을 마지막으로 토론토를 떠나게 되었으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의 팀을 거쳐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 '23년 8월에 토론토는 구단 명예의 전당인 "level of excellence"에 바티스타가 입성한다는 사실을 밝혔으며 1일 계약을 맺어 성대한 은퇴식을 열어주는 예우를 보여주었다. 함께 동료로 뛰었던 엔카나시온, 저스틴 스모크, 러셀 마틴 등 여러 선수과 존 기븐스, 드웨인 머피 등 구단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행사를 빛냈으며 이를 통해 바티스타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은 실패하였지만, 구단 역사의 가장 위대한 타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실제 바티스타의 현역시절 등번호인 19번은 현재까지 잠정적인 영구결번의 형태로 사용하는 선수가 없는 상태이다(프레디 갈비스, 앨런 핸슨이 실수로 잠시 사용하였으나 즉시 변경). 훗날 바티스타의 기록을 뛰어넘을 타자가 나타나겠지만, 바티스타가 토론토에서 남긴 발자취는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간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