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9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마 9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혈루증은 당시 부정의 증거로 여겨지는 병으로 그병에 12년이나 고생했던 한 여자..전 재산과 모든것을 바침으로 치료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심하여 지고 포기하던 와중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도 나을꺼라는 믿음으로 나아와 나음을 받았다
기독교의 모습은 삶의 조언을 받기 위함도 아니요, 인격을 수양하는 것도 아니요, 인맥과 사회생활을 위하여서도 아니다. 복을 바라는 것도 기본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며, 구원을 받는 종교가 기독교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복된 여자인가 아니면 저주받은 여자인가. 이 여자는 믿고 나아가 복음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복되다. 무엇보다도 큰 복은 믿고 행하는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었기에 복되다.
또한, 예수님게 나아갈 수 있었기에 복된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비판을 해치고, 더러운 것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헤치고 나아가서 말씀으로 인한 구원을 받았다. 그 나아갈 수 있는 힘은 간절함이었다. 믿음과 간절함으로 나아가 만짐으로 나음과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옷자락을 만질 수 있었기에 복되었다. 많이 따르는 이들은 그냥 따르는, 주변인으로 모습으로 예수님과 거리를 가지고 나아갔으되, 이 여인은 직접 옷자락을 만남으로 변화되었다. 딸이라 칭함받는 이 여인은 그만큼 가까이 나아왔기에 하니님의 딸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세상의 힘듬과 고난도 이를 통하여 오히려 구원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이 여인은 혈루증을 앓으면서 버림받은 삶을 살았으니 그로인해 간절히 주님을 바라봤기에 그로인해 구원을 받았다. 어렵고 힘들 수록 나아가서 손내밀고 만지길 바랄 수 있어야 한다, 나에게 주신 고난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부르시는 것일 수도 있다.
눅 9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눅 9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눅 9 59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눅 9 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눅 9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눅 9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기회를 놓친 이유는 무엇인가?
1.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눅 9 57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이 사람의 모습은 당시 유력지배층의 하나인 서기관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서기관은 순수한 마음으로 따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 입신양명의 길로 주를 바라봤기 때문에 거절의 말씀(58절)을 하신다.
왜 하나님을 믿는가?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닌 자신의 것을 버리기 위하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이다. 자신을 희생하고, 놓는 것이 기독교의 모습인 것이다.
옆에 있던 이에게 예수께서 제자가 되기를 권하시나 이는 아버지의 제사를 우선으로 삼는다. 이는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바람직 한 것으로 보이나, 이를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대의 장례풍습을 알아야한다. 유대의 장례풍습을 보면 우선 돌아가신이를 동굴에 모신 후, 1년 후에 그 시체에서 유골을 수습하여 다시 장레를 치른다. 즉, 이때 예수님이 권했던 이는 유골을 수습하기 위하여 부름을 미루려 한다.
2. 끊을 줄 알고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눅 9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1) 물질 : 내가 누리기 위한 물질이 아닌, 내가 물질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물질의 복을 간구하여야 한다.
(2) 이성 : 내 반려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이를 만족하고 충실히 임해야 한다.
(3) 명예 : 내 스스로 높음이 아니라 높을수록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할때 더욱 높여주실것이다.
(4) 쾌락 : 안식은 필요하나, 쾌락은 타락의 길로 가는 것이다. 그 정도를 유지하여 재충전의 기회로 사용할 수 있으면 바람직하나, 주객이 전도되고 본분을 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5) 자존심 : 성도의 자존심은 내 스스로 지키는 자존심이 아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자존심만이 가장 적합한 것이다. 스스로 높일 때 하나님께서는 이를 깨트리려 하실 것이고, 겸손히 내려놓고 부족함을 아뢸때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이다.
3.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눅 9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손에 잡은 쟁기는 일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뒤를 바라볼 때 바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내가 과거를 바라보고 있으므로 아쉬움과 미련, 또는 공치사를 하고 자랑하고자 할 때 앞으로의 길은 망가지는 것이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 류시화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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